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콘스탄티누스 1세 (문단 편집) === 군제 개혁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군제 개혁 이후에도 [[로마 제국]]에는 아직 과거의 군단체제 수준에 달하는 규모를 지닌 군단이 지역에 따라 존재했다. 그리고 이것이 4두정의 혼란을 증폭시킨 원인 중 하나다. 콘스탄티누스는 카라칼라 개혁으로 공식적으로는 하나로 통합되었던 [[레기온]]을 나누어 중앙 상비군인 코미타텐세스(comitatenses)와 국경 주둔병인 리미타네이(limitanei)를 창설하는데 이는 디오클레티아누스 때부터 이어졌던 군제 상황을 공식화한 동시에 보다 짜임새 있게 개편한 것이었다. 또한 과거의 군단 체제를 유지하던 나머지 군대 또한 죄다 코미타텐세스/리미타네이 체제로 바꾼다. 그리고 [[아우구스투스]] 때부터 전통이 내려오는 근위대인 [[프라이토리아니]]는 폐지했다. 로마 레기오가 후기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완전히 사라졌거나 혹은 리미타네이만 로마 레기오의 후예라는 잘못된 편견은 그냥 틀린 소리지만[* 의외로 상당히 반복되는 오류다. 전기 로마사에만 정통하고 후기는 잘 모르는 서구 학자들 또한 자주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이렇게 해산된 사실이 명확하기 때문에 적어도 근위대에 한해서는 그 말이 맞다. 콘스탄티누스는 스콜라이 팔라티나이와 팔라티나이 코미타텐세스를 만들어서 프라이토리아니의 역할을 대체한다. 전자는 황제 호위를 맡았고 후자는 야전 기동군인 코미타텐세스 부대들 중 최정예 부대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렇게 확립된 군제는, 나중 [[서로마]] 제국 멸망 때까지 그리고 [[동로마]] 제국에서는 적어도 [[마우리키우스]]가 훗날 테마제의 선구가 되는 군정과 민정을 총괄하는 체제를 선보일 때까지는 큰 변화 없이 이어진다. 즉 이후의 [[로마 제국]] 군제는 팔라티나이/코미타텐세스/리미타네이의 형태가 된다. 여기에 야만족 부족 전사집단을 '''한꺼번에''' 그대로 [[로마군]]으로 기용하는 포이데라티가 이 시기에 나타나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단, 콘스탄티누스가 창설했던 팔라티나이 코미타텐세스들은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때 발렌스 황제와 함께 궤멸되면서 사실상 붕괴했다. 포이데라티의 등장과 이러한 군제개혁의 결과, 이 시기 로마는 기록에 따라서는 60만 이상 되는 거대한 상비군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제국에게 지나친 부담이였기에 이후 군 규모는 차츰 축소되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애초에 처음부터 이런 대규모 상비군은 실제보다 과장된 장부상의 것이였고, 실 규모는 이의 2/3 수준이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